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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 단편집-세계인의 고전문학26

민족의 수난과 역사를 정직하게 진술한 민족주의적 사실주의 작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좌절하고 고뇌해온 가난한 지식인의 저항문학 44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생애를 마감한 현진건의 소설은 작품 성격으로 보아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문학적 생애의 초기에 발표된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등에서 보여 주고 있는 신변잡기적 소설, <할머니의 죽음> <운수좋은 날> <불> 에서 보여주고 있는 역사와 현실을 객관적 시점에 의해서 조망하고 있는 리얼리즘적인 소설, 그리고 <무영탑> <선화공주> 등에 나타나는 역사소설들이 그것이다. 빙허 현진건이 살았던 시대는 우리 민족의 치욕기라 할 수 있는 일제 식민기다. 그는 암울한 시대에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주체적 의..
민족의 수난과 역사를 정직하게 진술한 민족주의적 사실주의 작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좌절하고 고뇌해온 가난한 지식인의 저항문학

44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생애를 마감한 현진건의 소설은 작품 성격으로 보아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문학적 생애의 초기에 발표된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등에서 보여 주고 있는 신변잡기적 소설, <할머니의 죽음> <운수좋은 날> <불> 에서 보여주고 있는 역사와 현실을 객관적 시점에 의해서 조망하고 있는 리얼리즘적인 소설, 그리고 <무영탑> <선화공주> 등에 나타나는 역사소설들이 그것이다.
빙허 현진건이 살았던 시대는 우리 민족의 치욕기라 할 수 있는 일제 식민기다. 그는 암울한 시대에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주체적 의식을 확립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민족의 수난과 역사를 정직하게 진술하는 리얼리즘적인 작가로 일관해 왔다.
1920년 <개벽>에 처녀작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이 소설의 발표 직후 황석우로부터 가혹한 평을 받았다. 하지만 다음해 발표한 <빈처>는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빈처>는 일인칭 관찰자 서술로 서사를 진행시키는 자전적 소설의 성격을 지닌다. 가난한 무명작가(화자)의 아내와 호화스럽게 사는 처형을 대비 구조로 설정하면서 모순된 그 시대의 사회구조, 즉 일제 식민지 치하의 가난한 지식인이 겪는 삶의 양상을 증언하는 한편 일제의 경제수탈정책에 간접적인 질타를 보내는 작품이다.
이에 비해 <술 권하는 사회>는 현실의 참담함에 절망, 좌초한 지성인의 불안을 리얼하게 다룬다. <할머니의 죽음>은 그가 초기에 썼던 신변잡기적 일인칭 소설에서 벗어나 작가의 얼굴이 작품 속에서 감춰져 객관성을 획득하게 한 사실주의 소설로 진입하는 데 계기를 마련해 준 소설이다.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현진건의 대표작으로 일컫는 <운수좋은 날>은 우선 인물 설정이 지식인이 아닌 노동자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열흘 동안 돈 구경을 못한 인력거꾼 김첨지는 3원이라는 거액을 벌고 운수좋은 날이라 기뻐한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친구와 술을 먹고 아내가 좋아하는 설렁탕도 사들고 오나 행운 뒤에 따르기 마련인 불길한 예감대로 자식에게 젖꼭지를 물린 채 죽은 아내를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삶의 아이러니, 운명의 반어적 현상을 통해 삶의 본체, 그 단면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에서는 반어적 구조와 사건의 반전을 통해 한 여인(사감)의 이중적 인격, 위선을 희화적으로 다루고 있다.
현진건
(玄鎭健 1900~1943)

호는 빙허(憑虛). 대구 출생. 한말에 득세한 개화파 집안으로 아버지는 대구 우체국장이었다.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다가, 1912년 일본의 세이조중학(成城中學)에 입학하여 1917년에 졸업하였다.
1920년 <개벽(開闢)>에 <희생화(犧牲花)>를 발표함으로써 문필 활동을 시작하여 <빈처(貧妻)>(1921)로 문명을 얻었다. 1921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해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으며 홍사용, 이상화, 나도향,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白潮)>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여 1920년대 신문학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하였다.
1922년에는 동명사(東明社)에 입사, 1925년 그 후신인 <시대일보>가 폐간되자 동아일보사로 옮겼다. 1932년 상해에서 활약하던 공산주의자인 셋째 형 정건(鼎健)의 체포와 죽음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자신도 1936년 동아일보사 사회부장 당시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인하여 구속되었다.
1937년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으며, 빈궁 속에서도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지내다가 1943년 장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장편•단편 20여 편과 7편의 번역소설, 그리고 여러 편의 수필과 비평문 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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