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수난과 역사를 정직하게 진술한 민족주의적 사실주의 작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좌절하고 고뇌해온 가난한 지식인의 저항문학
44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생애를 마감한 현진건의 소설은 작품 성격으로 보아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문학적 생애의 초기에 발표된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등에서 보여 주고 있는 신변잡기적 소설, <할머니의 죽음> <운수좋은 날> <불> 에서 보여주고 있는 역사와 현실을 객관적 시점에 의해서 조망하고 있는 리얼리즘적인 소설, 그리고 <무영탑> <선화공주> 등에 나타나는 역사소설들이 그것이다.
빙허 현진건이 살았던 시대는 우리 민족의 치욕기라 할 수 있는 일제 식민기다. 그는 암울한 시대에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주체적 의식을 확립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민족의 수난과 역사를 정직하게 진술하는 리얼리즘적인 작가로 일관해 왔다.
1920년 <개벽>에 처녀작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이 소설의 발표 직후 황석우로부터 가혹한 평을 받았다. 하지만 다음해 발표한 <빈처>는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빈처>는 일인칭 관찰자 서술로 서사를 진행시키는 자전적 소설의 성격을 지닌다. 가난한 무명작가(화자)의 아내와 호화스럽게 사는 처형을 대비 구조로 설정하면서 모순된 그 시대의 사회구조, 즉 일제 식민지 치하의 가난한 지식인이 겪는 삶의 양상을 증언하는 한편 일제의 경제수탈정책에 간접적인 질타를 보내는 작품이다.
이에 비해 <술 권하는 사회>는 현실의 참담함에 절망, 좌초한 지성인의 불안을 리얼하게 다룬다. <할머니의 죽음>은 그가 초기에 썼던 신변잡기적 일인칭 소설에서 벗어나 작가의 얼굴이 작품 속에서 감춰져 객관성을 획득하게 한 사실주의 소설로 진입하는 데 계기를 마련해 준 소설이다.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현진건의 대표작으로 일컫는 <운수좋은 날>은 우선 인물 설정이 지식인이 아닌 노동자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열흘 동안 돈 구경을 못한 인력거꾼 김첨지는 3원이라는 거액을 벌고 운수좋은 날이라 기뻐한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친구와 술을 먹고 아내가 좋아하는 설렁탕도 사들고 오나 행운 뒤에 따르기 마련인 불길한 예감대로 자식에게 젖꼭지를 물린 채 죽은 아내를 발견하게 된다. 이 소설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삶의 아이러니, 운명의 반어적 현상을 통해 삶의 본체, 그 단면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에서는 반어적 구조와 사건의 반전을 통해 한 여인(사감)의 이중적 인격, 위선을 희화적으로 다루고 있다.
현진건
(玄鎭健 1900~1943)
호는 빙허(憑虛). 대구 출생. 한말에 득세한 개화파 집안으로 아버지는 대구 우체국장이었다.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다가, 1912년 일본의 세이조중학(成城中學)에 입학하여 1917년에 졸업하였다.
1920년 <개벽(開闢)>에 <희생화(犧牲花)>를 발표함으로써 문필 활동을 시작하여 <빈처(貧妻)>(1921)로 문명을 얻었다. 1921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해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으며 홍사용, 이상화, 나도향,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白潮)>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여 1920년대 신문학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하였다.
1922년에는 동명사(東明社)에 입사, 1925년 그 후신인 <시대일보>가 폐간되자 동아일보사로 옮겼다. 1932년 상해에서 활약하던 공산주의자인 셋째 형 정건(鼎健)의 체포와 죽음으로 깊은 충격을 받았는데, 그 자신도 1936년 동아일보사 사회부장 당시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인하여 구속되었다.
1937년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소설 창작에 전념하였으며, 빈궁 속에서도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지내다가 1943년 장결핵으로 사망하였다. 장편•단편 20여 편과 7편의 번역소설, 그리고 여러 편의 수필과 비평문 등을 남겼다.